안철수를 감성적으로 바라보자
안철수를 감성적으로 바라보자.
젊은이들이 안철수에 열광하는 이유가 지금 20대의 ‘감성’을 건드렸기 때문이란다. 아무리 팩트를 말해도 이미 마음 속 깊이 자리잡아 버린 그. 내 맘 속의 화석이다. 어떤 다른 말도 들리지 않는 상태. 20대는 논리가 아니라 감성으로 사고하는 세대라서 그렇다면서?
근데 꼭 20대만 그런 건 아니다.
우리나라 어버이들도 논리보다는 감성이 늘 우선이었다. 우리가 남이가, 저놈은 빨갱이다, 가난해서 구해주신 분, 육영수 코스프레 등등. 지금 젊은이들의 감성이 그토록 굳건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상이라면, 어버이들이 철떡 같이 믿고 계신 ‘그래도 좌빨 정권은 안되지’ 도 그 세대의 특성이고 어쩔 수 없는 건가?
사기친 동영상이 나와도, ‘아니야, 우리 장로님이 경제를 살려주실꺼야’도 그 세대의 특성인가? 백신 무료 배포는 만들어진 신화라고 말해도, ‘아니야, 그러실 분이 아니야. 엠비와는 격이 다른 고마운 분이야.’ 이 예민한 감성이 20대만의 특성인가?
그래서 우리도 감성 마케팅 함 해보자.
예민한 감성으로 안철수를 바라보자고.
안철수가 혼자서 샌드위치 점심을 먹는다던가, 직원 하나를 해고했더니 자기 앞에서 울었다던가, 대통령이 되어야 혼자서 많이 바꿀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도 갑자기 그를 감성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그냥 와서 팍 꽂힌다. 안철수가 어떤 사람인지. 논리로 따지지 마라. 그냥 느껴라.
안철수 기사를 쓸 때 이렇게 감성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다 싶어 긁어왔다. 감성적 찌라시 스타일로, 앞뒤 맥락 다 자르고 필요한 부분만 발췌했다. 안철수를 감성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좋은 표제 있으면 의견 달아봐라.
기러기 아빠 생활은 어떤가요. 집안 일도 직접 하는지?
“지금 저의 집 살림은 어머니가 해주세요. 팔순 된 아버지는 부산에 있는 병원에서 환자보고 계시는데 저 때문에 올라와 계시지요. 어떤 사람들은 (아내와 아이를 유학 보낸)저보고 '밥은 어떻게 해먹고 있느냐, 고생한다'고 하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좋겠다'고 하거든요. 제가 그러지요. 고생한다는 사람에게는 '나는 편하고 예전하고 달라진게 없다. 아버지가 고생이다', 좋겠다는 사람에게는 '아버지가 좋으시다'라고요(웃음).”
<21세기 디지털 리더, 안철수의 마인드> "내가 생각하는 부와 성공, 가족의 의미 그리고 기러기 아빠로 사는 요즘” (여성조선 2005.1월호)
위 기사에 대한 감성적 표제의 사례
1. 집안 일은 노모에게
2. 마마보이 안철수
3. 살림은 여자가- 진정한 경상도 남자, 안철수
4. 성공한 기업인의 노모 학대
다음은, 안철수의 대학생활에 관한 인터뷰 기사다.
안철수는 유시민이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던 1980년에 서울대 입학했다.
- 젊은 날,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의대 본과 일 학년 과정이 끝난 겨울 방학 때에 저는 부산에 내려가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실컷 놀았습니다. 정처없이 기차를 타고 낙동강 변의 아무 역에나 내려 낚시를 하기도 하고 바둑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부산에서 길지 않은 겨울 방학을 보내고 서울에 올라가야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잘 참고 있었는데 불쑥 그런 감정이 치솟아 오른 것이죠. 도저히 서울로 갈 마음이 나질 않았습니다.
의대생들에게는 성적이 평생 지고 다닐 멍에가 됩니다. 레지던트 시험에도 학부 때의 성적이 그 중요한 지표가 돼죠. 반에서 어느 정도 이상은 되어야 자기가 원하는 과를 갈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과도 같은 처지인 것이죠.
말하기로는 십등 안에는 들어야 자기 원하는 과를 선택할 수 있다고들 했어요. 그 등수 안에 들기 위해서 비인간적인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성적을 따야 했기에 걱정이 되어 겨울 방학 끝나기 일주일 전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미리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숙을 하던 방에 발을 디딘 순간 혼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방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데 늪에 빠지는 듯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제 주위에는 친구도 없어서 고민을 털어놓고 말할 사람도 없었어요. 더구나 부모님들은 멀리 계셨으므로 내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도 모르실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더 답답해져 왔습니다. ‘성적이 잘 나온 걸 보고 서울 생활에 잘 견디고 있는 줄로만 아시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부모와 자식 간에 공유할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어요.
아마도 그때가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마음은 점점 정처를 모르고 떠돌아 다녔어요. 방황이란 말이 처음으로 실감되었는데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느낌이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든 솔직한 심정으로는 학교에 다니기 싫었습니다. 어쩔 줄 몰라 쩔쩔 매다가 어머니께 장거리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는 울면서 말했어요. “어머니, 공부가 너무 힘이 듭니다.”
깜짝 놀라신 어머니께서는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올라오셨습니다. 그날로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셨어요.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저는 계속 울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달래주셨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눈물부터 먼저 나왔어요.
[안철수] 그가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여섯 가지 조언 2011.5.29. 경향
골라 봐라.
1. 친구 없던 외톨이 대학시절
2. 공부가 가장 힘들었어요 잉잉.
3. 어머니, 공부가 너무 힘이 듭니다!
4. 울지마라 아들아.
5. 심약했던 안철수
안철수의 정치적 입장, 역사관, 국가관 등을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별로 없지만, 솔까, 그를 감성적으로 바라볼 재료는 찾아보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정통언론사. 찌라시들과 같이 뒹굴 순 없다. 이 정도만 하자.
2011.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