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사람이 좀 이상한 거 같다.
이 글은 안철수를 까는 글이 아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바로 잡으면서, 내가 왜 착각하고 있었는지 그 근거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여 정리한 글이다.
사람들이 안철수를 존경하는 배경인, 안철수가 “27세의 최연소 의대 학과장”이었다는 사실이 나는 좀 의아했다. 여러 글과 인터뷰에서 안철수는 “27세 최연소 의대 학과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람들은 그가 27세 서울대 의대 학과장 이었으며, 의대 교수 라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안랩을 창립한 걸로 알고 있다.
나만 그렇게 알고 있었나? 그럼 내 착각이었고. 아무튼 나는 그 착각에서 깨어났다. 안철수가 스스로 ‘서울대 의대 학과장’이었다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서울대 법대 입학이나 사회계열 입학이나...그래서 오해하도록 그냥 놔둔 건가?
▶ 안철수의 경력(출처:네이버)
1995.02~2005.03 | 안철수연구소 창립, 대표이사 |
1991.02~1994.04 | 해군 대위 |
1990.01~1990.02 | 일본 규슈대학교 의학부 방문연구원 |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 학과장 | |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 | |
1986.03~1989.09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조교 |
▶ 안철수 경력 (출처: 다음)
1995 ~ 2005 |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
1991 ~ 1994 | 해군 군의관 |
1990 ~ 1990 | 일본 규슈대학 의학부 방문연구원 |
1989 ~ 1991 |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 의예과 학과장 |
1986 ~ 1989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조교 |
▶ 설립자 이력 (출처:안철수 연구소 회사 소개)
1995. 02 - 2005. 03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1991. 02 - 1994. 04 해군 군의관 (대위)
1990. 01 - 1990. 02 일본 규슈대학 의학부 방문연구원
1989. 09 - 1991. 02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 및 의예과 학과장
1986. 03 - 1989. 09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조교
안철수는 입대하기 전, 단국대 의대 의예과 학과장으로 일했다. 출처마다 복무기간이 다른데, 안랩의 자료를 보면 1년 반쯤 된다. 제대 후 10개월 뒤 안철수 연구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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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갈림길 - 안철수 대표 |
안철수('안철수연구소' 대표) |
2003년 10월 01일 (수) 00:00:00
나는 컴퓨터 초보자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공개했고, 그 많던 컴퓨터 바이러스는 멸종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한번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니까 계속 발견되는 신종 바이러스는 모두 나에게 해결 요청이 들어오게 되었다. 사명감도 들었고 보람도 느꼈기 때문에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6시까지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고, 출근해서는 하루 종일 의학 전공 일을 하는 힘든 생활을 7년 동안 계속 하게 되었다.
94년부터는 상당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조교수가 되는 해였는데, 조교수가 되면 대학원생들의 지도교수로서 책임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에서는 아무리 자기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새벽에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의학에 몰두하는 것이 학생들에 대한 도리이고, 개인적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전까지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2달에 3개 정도 나오는 상황이라 혼자서도 충분히 대처가 가능했는데, 94년 정도 되니 70여 종으로 늘어나 더 이상은 파트 타임으로는 바이러스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어느 한 쪽만을 고집해도 세계적인 수준이 되기가 힘든데, 둘 다 하다가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못 되고, 나 자신에게도 2류 의학자와 2류 컴퓨터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할 것 같았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이성적으로는 금방 결론이 나왔다. 당시에 우리나라에 바이러스나 컴퓨터 보안 쪽의 일을 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의학 쪽에는 이미 많은 인력이 있었고, 어쩌면 나보다도 훨씬 재능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의학계가 아니라, 컴퓨터 보안 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동안 일궈낸 성과들-서울의대를 졸업하고 27살의 비교적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된-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 갈등을 하면서 느낀 한 가지는 성공이라는 것이 반드시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성공은 변신하려고 할 때는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고민을 끝에 내린 결론은 아무리 커다란 성공을 하였든, 혹은 커다란 실패를 하였든 간에 그런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항상 현실에 무게를 두고 미래를 향해 어떤 것을 해야 내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과 사회에 공헌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판단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대 교수를 포기하고 정보 보안 쪽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컴퓨터 쪽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에서 기술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출처http://www.upkorea.net/news/articleView.html?idxno=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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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직접 쓴 위 글에는, 1994년 군대 제대 후 조교수가 되었고(어느 학교? 서울대? 단국대?) 조교수 일과 백신개발 일을 양립할 수 없었으므로 “27세 교수”를 포기하고 컴퓨터 보안쪽으로 진로를 바꾸었다고 되어있다.
27세 교수? 서울대 교수? 단국대 교수? (안철수는 여러 인터뷰에서 그냥 ‘의대 교수’라는 말을 쓴다.)
네이버 인물정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네이버 자료에는 ‘조교수’라는 경력이 빠져있고, ‘단국대 전임강사’라고 되어있다. 다음 자료도 마찬가지다. 이 자료들이 사실이라면, 단국대 의대는 ‘전임강사’를 학과장으로 임명한 것인지? 뭐 그럴 수도 있겠지.
▶ 단국대 의대 연혁
1988.3. | 이공대학 의예과로 신설 (정원30명) |
| "의과대학 교사 및 단국대학교 병원 기공식 |
| "의과대학 의학과 신설 |
| 의과대학 의예과로 개편 |
| 의과대학 의학부 신설 |
| 의료기관 개설승인 (진료과 24개, 허가병상 600병상) |
(출처:단국대 의대 홈페이지)
단국대 의대 의예과 연혁을 보면 만 27세 학과장이 이해가 된다. 신설학과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대학원생들 지도교수 책임’ 이런 말은 뭐지? 신설학과였는데...)
안철수 말대로, 1994년 4월, 군대 제대 뒤 조교수가 되었다면, 일단 단국대로 복직한 것으로 생각해야겠지? 서울대 조교수로 신규임용되었다면, 경력사항에 빠질 리가 없겠지?
그런데 이상한 기사가 하나 있다. 2001.9.22. 오마이뉴스 인터뷰 기사다.
"군의관을 마친 뒤 복직 절차를 밟으면서 대학측에 실험기자재를 요청했었다. 그때문인지 복직이 안 됐다. 10개월간 실업자로 지내면서 무엇보다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사는 게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창업하게 됐다. 초반에는 어려워 사장으로서 월급 한푼 안 가져 갔다. 한번은 직원에게 줄 월급이 없어, 한 달만 참으라고 말할 수도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1000만원을 빌려 월급을 줬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54354&PAGE_CD=
이 기사대로라면, 안철수는 1994년 4월 군대 제대 뒤, 단국대로 복직하지 않았고(안했든 못했든) 10개월을 실업자로 지내며 창업 결심을 했다. 10개월 뒤는 1995년 2월이므로 회사 창립 시기와 맞다.
이 인터뷰를 한 2001년에만 해도, 건전하고 상식적인 한 기업인이었던 안철수가, 시간이 지나면서, 홍보하려고 자기 과장 마케팅을 한 건가?
그래서 ‘최연소 의대 학과장’ 자리를 포기하고, 회사를 창립했다는 신화를 쓴 건가? 아니면 전국민이 스스로 최면 걸기를 한건가?
2011.11.23.